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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소시민들이 외치는 인간의 본질 그리고 도리

입력 2017.07.18 10:15수정 2017.07.18 10:58

[fn★리뷰] ‘택시운전사’ 소시민들이 외치는 인간의 본질 그리고 도리


“모르겄어라. 우들도 우덜한테 왜 그러는지”

영화 ‘택시운전사’는 류준열이 뱉은 이 말에 대한 답을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비극의 시발점을 파헤쳐 정치적 계몽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진솔하게 80년대 광주 항쟁의 진실을, 오로지 그 곳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2017년 역사 위에 펼쳐낸다.

“대학 가서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하고. 복에 겨웠다”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만섭은 11살 딸을 홀로 키우는 서울의 택시운전사로 그 시절의 어른이자 평범한 소시민이다.

밀린 월세 탓에 집주인(전혜진 분)에게 큰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만섭에게 황금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독일에서 온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을 태우고 광주를 갔다가 통금 전에 돌아오면 밀린 월세만큼의 큰돈인 10만원을 준다고 하니 만섭은 단번에 기나긴 여정을 나선다.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익힌 짧은 콩글리시로 힌츠페터와 겨우 소통하며 자신의 브리사 택시를 몰고 광주에 들어서지만 출입구마다 삼엄하게 설치되어있는 바리게이트와 군인들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다.

[fn★리뷰] ‘택시운전사’ 소시민들이 외치는 인간의 본질 그리고 도리


그러나 어떻게든 택시비는 받아야 하고, 기지를 발휘해 검문을 뚫고 겨우 광주로 들어서지만 그가 목도한 현장은 단순한 ‘운동권의 저항’이 아니었다. 이유 없는 폭력, 무자비한 대학살이었다. 단순한 대학생들의 철없는 데모로만 알았던 목소리의 진짜 실체였다.

가장이자 아빠인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 분)과 대학 가요제 입성을 꿈꿨던 평범한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분)과 함께 하게 된 만섭은 상식적인 변화를 겪는다. 투철한 신념과 저항 정신으로 꾀해진 변화가 아니다. 틀림을 행하는 자들이 보여주는 잔인함에 자연스레 용기가 생기고, ‘해야 할 일’을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 머리를 든 것이다.

단편적으로 영화만 봤을 때 사건발생의 인과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역사적 학습 효과’는 없다. 하지만 이 참상을 다시 한 번 일깨움으로써 이를 목격한 관객들에게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갖가지의 감정을 이끌어내며 인간 도리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러한 과정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시선의 주체가 이방인이기 때문. 지역 무리에 속하지 않던 낯선 서울의 택시운전사와 푸른 눈의 목격자, 독일 기자가 바라본 오롯한 광주의 모습은 객관성과 사실감을 더욱 부여한다. 또한 극이 신파로 가지 않게끔 돕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사건보다 올곧이 인물의 디테일에 주목하면서 그들이 겪는 넓은 진폭의 감정은 살리되, 드라마틱한 상황 연출은 뺌으로써 담백함과 진정성을 배가시켰다.

‘의형제’ ‘고지전’ 등의 작품에서 사건의 규모나 과정 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완전히 상반된 상황에 처한 인물 간의 교감을 다루며 탁월하게 드라마를 부여한 장훈 감독의 강점이 ‘택시운전사’에서도 빛을 발한 것이다.

독일 기자, 서울의 택시 운전사, 광주의 시민들, 완벽히 다른 각각의 캐릭터들의 감정을 유려하게 주무른다. 과하게 연출된 일부 장면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장훈 감독의 짙은 강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핵심 인물이자 만섭과 더불어 이방인의 눈을 지닌 위르겐 힌츠펜터(피터)의 입체감이 희미해 아쉬움을 남긴다.

[fn★리뷰] ‘택시운전사’ 소시민들이 외치는 인간의 본질 그리고 도리


무엇보다 ‘택시운전사’는 송강호의 다채로움을 꼼꼼하게 활용했다. ‘변호인’ ‘밀정’ 등 한 시대의 인물이 실재함을 실감케 한 그는 역시나 압도적인 연기로 관객들을 80년대 광주로 초대한다. ‘노 광주 노 머니’를 내뱉는 유머러스함부터 만섭이 느끼는 동요와 갈등까지 고스란히 표출해내며 다시 한 번 배우 송강호의 위용을 느끼게끔 한다.

80년대의 청춘을 대변한 류준열 역시 구수한 사투리 속에 입혀진 순박하게 웃는 얼굴로 안정적인 텐션을 유지시키며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외에도 유해진을 비롯한 광주의 택시운전사와 박혁권 등은 광주의 온기를 스크린 위로 옮겼다.

송강호는 인터뷰를 통해 “일부러 다양하게 인간 군상을 만들어내려고 해도 당시 광주 시민들의 순수한 마음을 왜곡할 수 없질 않나. 그런 점에서 ‘택시운전사’ 속 인간 군상들이 입체적이지 않은 것은 있지만 왜곡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곧 ‘택시운전사’의 본질이다. 8월 2일 개봉.

/9009055_star@fnnews.com fn스타 이예은 기자 사진 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