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필리핀 ‘탈원전 실패’의 뼈저린 교훈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16 17:15

수정 2017.07.16 17:15

[데스크 칼럼] 필리핀 ‘탈원전 실패’의 뼈저린 교훈

지난 2015년 5월이었다. 필리핀 정부는 전 국민에게 "에어컨과 냉장고의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 파키아오와 미국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간 복싱경기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1억명 넘는 필리핀 국민이 국민영웅인 파키아오를 응원하기 위해 필리핀 전역에서 TV 응원에 나설 경우 전력 공급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져 블랙아웃(정전사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만성적 전력부족 국가다. 필리핀은 50% 이상의 전력을 석탄과 디젤 발전에서 공급받고 있다.
그마저도 공급량이 부족하다. 이처럼 필리핀이 전력난에 빠진 결정적 이유로 원전 건설 중단을 꼽는 전문가가 많다. 본래 필리핀은 전력난 해소를 위해 지난 1976년 바탄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필리핀의 원전 건설은 지난 1987년 '제1차 피플파워'로 마르코스 대통령이 축출된 후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이 대통령에 오르는 정국 변화에 영향을 받아 완성 단계에서 중단됐다. 40여년이 흐른 현재, 필리핀에선 바탄 원전의 재가동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공교롭게 우리나라도 40년 전 필리핀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일명 '촛불혁명'을 계기로 창출된 새 정부가 탈원전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14일 이사회를 열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갑자스럽게 결정했다. 물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원전의 위험성을 우려해 탈원전의 목소리가 높아진 건 사실이다. 원전 없는 친환경적 에너지 국가를 만들려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다만 절차적 정당성과 현실적 대안이 있다는 전제가 따른다.

그러나 정부와 한수원의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일시중단 결정은 정책목표를 향해 절차를 소홀히 한 행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3개월간의 공론화를 위한 일시 건설중단이라지만 한수원 이사회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행보를 보일 만큼 긴급한 상황이었을까 의문이 든다. 그것도 사전예고 없이 이사회가 호텔에서 안건을 비공개로 처리한 것도 절차적 정당성을 얻기에 합당한 일이었을까. 원전 문제를 공론화의 장에 올리기도 전에 유관기업과 지역 주민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독단적 행보는 사회적 갈등만 유발한다.

당장 원전을 폐기할 경우 대안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에너지자급률 60%의 3분의 1 수준도 되지 않는 에너지 부족국가다. 그나마 저비용·고효율의 원전으로 보완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한 친환경 에너지는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면적 약 10만㎢ 중 임야는 76%, 가용토지는 5.6%에 불과해 친환경 에너지 설비를 가동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신고리 5.6호기는 총 8조원이 투입된다. 그간 1조6000억원이 들어갔다.
공사를 완전 중단할 경우 손실과 보상 등으로 2조6000억원이 들어간다.

문득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떠올려본다.
'판도라'와 같은 탈원전 정책도 그래야 성공한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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