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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 트럼프 시대, 대학의 사명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14 17:31

수정 2017.07.14 17:31

[세계 석학에 듣는다] 트럼프 시대, 대학의 사명

많은 사회에서 대학은 이데올로기와 지적인 독립의 요람 역할을 한다. 우리는 대학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인성을 개발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한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대학이 중요해졌다.

대학과 달리 이윤을 추구하는 미디어 기업은 역동적인 '사회적 계층' 양성의 임무를 부여받은 적이 없다. 분명한 점은 미디어가 자신들의 기반인 광고주와 투자자를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 또는 최소한 그들에 대한 공격을 피해야 한다는 상당한 압력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작가 겸 정치평론가인 월터 리프먼이 결국에는 공공 지능이 대학, 싱크탱크 또는 다른 틈새에서 작동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전후 대부분 기간 영리를 추구하는 미디어의 구조적인 기형은 비교적 해가 없었다. 나치즘과 파시즘의 고삐를 풀어준 극우는 정치적으로 추방됐다. 극좌도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북대서양에는 정치적 민주주의, 자유시장, 사회보장의 3종 세트만 남았다. 가장 많은 이들에게 어떻게 가장 큰 이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기술관료적 논쟁은 이데올로기의 방해 없이 추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로런스 서머스의 말마따나 '트럼프 시대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비평에서 서머스는 특히 대학이 당면한 문제에 맞서는 데 실패한 것을 한탄했다.

서머스는 대학이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학생들을 더 많이 채용하고, 입학시키고 교육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학이 잘 준비된 학생들만을 받아들인다면 그저 게으르지 않은 것에 그칠 뿐이다. 대학은 학생, 교직원, 공동체에 대한 의무 이행에서도 실패하게 된다. 경쟁자들보다 덜 준비된 불우한 학생들이 출생환경 때문에 비난받아서는 안된다.

경제적으로 대학의 의무는 교육의 '부가가치'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이는 대학이 교육서비스를 통해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을 찾아나서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 일단 합격이 되면 이들 학생은 학업을 마치는 데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만 한다.

"미국이 지금 사상 처음으로 과학을 부정하고, 산술적으로 불건전한 예산안을 제안하며, 대안적 사실을 이용하는 비이성적인 대통령을 갖고 있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라는 서머스의 또 다른 지적 역시 옳다. 대학은 서머스가 지적하듯 '더 큰 진실을 향한 수단으로서 솔직하고 열린 논쟁의 보루'가 돼야 한다. 우리는 지적 다양성을 일궈내야 한다. 그러나 실패했거나 불건전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아이디어들은 물리쳐야 한다.

이런 이유로 대학 교직원과 학생은 추가로 논의할 가치가 있는 어떤 아이디어든 제안할 수 있다. 자신들의 관점을 공유하는 연사를 초청할 자유도 가져야 한다.

분명 대학은 아이디어들을 교환하고 평가하며 새로운 주장과 증거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바꾸는 것이 안전한 장소여야 한다.

연설과 논쟁의 공동체로서 대학은 분열에 취약하다. 이는 서머스가 제대로 강조하고 있듯이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다. 게다가 캠퍼스의 혼란은 종종 사회적 무질서의 신호로 인식되곤 한다.
서머스는 1960년대 로널드 레이건의 정치적 부상이 부분적으로 당시 버클리대(UC버클리)의 학생 시위에 독설을 퍼부은 데서 비롯됐다는 역사가 릭 펄스타인의 지적을 상기시키고 있다. 서머스는 대학의 급진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고 "정치적 효과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누구나 의심할 수 있듯 도널드 트럼프는 여기에 기대고 있다.

브래드포드 디롱 美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경제학 교수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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