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왜 지금 슘페터인가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10 16:51

수정 2017.07.10 16:51

'창조적 파괴' 원조 전도사로 4차 산업혁명과 찰떡 궁합
우린 왜 거꾸로 가려 하나
[곽인찬 칼럼] 왜 지금 슘페터인가

요새 조지프 슘페터가 뜨는 모양이다. 그를 말하는 이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하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슘페터가 뜨는 게 이상할 게 없다. 그는 창조적 파괴의 전도사다. 혁신을 자본주의가 가진 속성으로 봤다. 4차 산업혁명은 슘페터와 궁합이 잘 맞는다.


이달 초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슘페터를 말했다. 창립 20주년 기념사에서다.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라는 슘페터의 말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미래에셋의 혁신들은 처음엔 낯설었고 다음엔 인정받고 결국엔 상식이 됐다"고 말했다. 박 회장 말에 동의한다. 물론 미래에셋이 판 '인사이트 펀드' 때문에 큰 손해를 본 투자자들도 있다. 이들의 귀엔 거슬리겠지만, 혁신이란 그런 거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제 길을 닦는다.

고두현 시인은 '처음 출근하는 이에게'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잊지말라/지금 네가 열고 들어온 문이/한때는 다 벽이었다는 걸….' 박 회장은 이 시구절을 인용하면서 "미래에셋은 금융에 새 길을 여는 영원한 혁신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 뜻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슘페터를 말한다. 최근 쓴 '경제철학의 전환'이라는 책에서다. 그는 "경제철학을 (케인스주의에서) 슘페터주의로 전환할 필요성은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절실하다"고 말한다. 변 전 실장의 말을 더 들어보자. "슘페터식 혁신이야말로 저성장 시대에 성장을 가능케 하며… 우리나라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종합 처방이다." 변양균은 노무현정부 사람이다. 진보적 전직 경제관료가 말하는 슘페터 재평가가 흥미롭다.

이제 문재인정부를 보자. 새 정부는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한마디로, 슘페터주의와 거꾸로다. 틈만 나면 시장을 집적대지 못해 안달이다. 시장은 창의와 혁신이 꽃 피는 곳이다. 외부 간섭은 그 싹을 자르는 꼴이다.

디지털 혁신에 나선 한국씨티은행이 정치권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점포를 줄이려다 사달이 났다. 노조는 국회로 달려갔고, 정치인들은 금융위원회에 압력을 넣는다. 현실은 어떤가. 대다수 씨티은행 고객들은 더 이상 창구를 찾지 않는다. 스마트폰 몇 번 누르면 거래 끝이다. 발품 팔아가며 창구로 갈 이유가 없다. 씨티가 총대를 멨을 뿐 다른 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창구는 많이 둘수록 손해다. 다만 '일자리 정부'한테 찍힐까봐 몸을 사릴 뿐이다. 슘페터적 혁신이 정치에 짓눌린 꼴이다.

통신료 시장에 정부가 끼어든 것도 꼴불견이다. 정부가 요금을 매기면 기업은 당최 기업 할 재미가 없다. 오늘 한국의 모습을 슘페터가 봤다면 끌끌 혀를 차지 않았을까.

슘페터는 1883년생 동갑내기 케인스보다 따르는 사람이 적다. 왜 그럴까. 케인스는 불황 때 재정을 쏟아붓는 단기대책의 왕좌다. 효과도 뚜렷하고, 제 돈인 양 폼도 잡을 수 있다. 어떤 관료와 정치인이 이를 마다할까. 문재인정부도 일자리 추경을 짰다.

반면 슘페터는 "자본주의에서 불황은 찬물 샤워와 같다"고 말한다. 불황이 되레 혁신을 자극한다는 뜻이다. 불황이 닥쳐도 기업가들이 알아서 할 테니 국가는 뒤로 빠지라는 얘기로 들린다.
슘페터는 21세기 혁신을 이끌 사상적 기둥이다. 다만 그를 따르려면 여론에 휘둘리지 않을 두둑한 배짱과 인내심이 필수다.
불행히도 한국에선 슘페터가 설 자리가 좁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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