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판

[yes+ Culture] 황석영 "문학은 내 인생이자 집이었다"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08 20:26

수정 2017.06.08 20:26

황석영 자전 '수인'
"나는 늘 집을 그리워하고 갈망했다"
한국전쟁부터 4.19, 5.18을 거쳐 방북과 망명, 수인생활의 굴곡진 인생
소설가의 자서전은 어리석다 했지만 함께 겪은 일들을 모두가 공유하고 역사.문학 자료로 중요할거 같았다
자전 '수인'을 발표한 작가 황석영이 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로 발간한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전 '수인'을 발표한 작가 황석영이 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로 발간한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문학이라는 집이었다. 세상의 뒤안길을 떠돌며 노심초사하다가도 퍼뜩 정신이 들면 나는 늘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작가 황석영(75)이 몸으로 써내려간 자전 '수인(囚人)'을 내놨다.
현대사의 숱한 굴곡과 파란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겪어온 그가 자신이 지나온 파란만장한 삶, 자유를 위해 시대의 억압과 맞서온 불꽃 같은 여정을 2권의 책에 담아냈다.

고교 재학 중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1970년 '탑'으로 등단한 그는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문학계 거장이다. 그의 '객지' '가객' '장길산' '바리데기' '낯익은 세상' '해질 무렵' 등은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들이다.

그런 그였지만 당초 자전적 책을 낼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황석영은 8일 서울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자서전 따위는 쓰지 않겠다고 생각해왔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삶과 내면을 드러내놓을 정도로 여유롭지 않다. 더구나 자신의 경험이 소재가 되는 자전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털어놨다.

그랬던 그가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그 후대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사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 한 신문사에 어린시절부터 1976년 전라도 해남으로 이주한 자신의 이야기를 연재한 바 있다. 원고지 2000장 분량의 이야기였다. 여기에 1980년 광주항쟁, 1989년 방북과 망명, 투옥 등의 내용으로 2000장을 새로 썼다.

"연재가 끝난 뒤 이것은 거의 생각도 안하고 내버려뒀는데, 자전을 쓰기 시작하면서 쓴 기록을 읽어보니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개인의 삶을 정리한 것이지만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겪은 일들을 공유해야 하고, 내 뒤의 사람들이 이를 다시 역사적, 문학적 자료로 중요하게 간직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yes+ Culture] 황석영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온 몸으로 맞닥뜨린 그의 지난 인생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하다. 만주 장춘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어머니 등에 업혀 남한으로 내려왔다. 어린시절 한국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4.19의 소용돌이에서 소중한 친구를 잃어야 했다. 젊은 날의 방황 속에서 해병대 입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에도 유신독재에 저항했고 5.18 광주항쟁, 6.10 항쟁을 함께 했다. 1989년 방북은 당시 큰 사회적 충격이었다. 이후 4년간의 망명 생활을 거쳐 5년간의 수인 생활까지 숨가쁘게 흘러왔다.

이 책은 1993년 작가가 방북과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곧바로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가 취조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감옥에서의 수인 생활을 큰 줄기로 유년과 청년 시절을 촘촘히 얽었다.

그는 "작가로서 평생을 자유를 추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늘 자유롭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나. 이 책의 제목이 '수인'이 된 이유도 그것이다"고 했다.

그가 시대의 '수인'으로 자유를 빼앗겨야 했던 것은 완강한 금기의 벽 앞에 스스로 몸을 던져 그것을 깨뜨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로 담아낸 그의 삶의 이력은 이런 행동이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했던 역사적, 문학적 필연성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온통 방황과 질곡이 가득한 인생에서 그가 단단히 붙잡고 있던 것은 '문학'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는 "인생의 결정적 순간마다 문학이라는 신념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냈을까. 문학은 내가 늘 갈망해왔던 집이었다. 먼 길을 갔더라도 다시 돌아와 집에서 글을 쓰는, 깜깜한 밤에 저 멀리서 밝히는 빛처럼 나를 끌어왔다.
(이렇게 말하는게 쑥스럽지만) 문학이 나의 인생이자 집인 것"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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