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fn 스포트라이트 사법피해자, 공권력에 무너진 삶(3)] 억울한 옥살이 형사보상금, 지급 기한·이자 규정 없어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30 17:30

수정 2017.05.30 22:07

(3) 억울한 옥살이에도 보상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
"무작정 기다리라니"… 형사보상금, 지급 기한·이자 규정 없어
형사보상청구서 결정까지 6개월이상 걸린 사례 5건
지급청구 후 지급까지 4개월이상 지난 사례 6건 등 형사 보상금 장기 지연에 이자 청구 소송까지 제기
미구금자 보상 포함 주장에 형사보상 청구 남용될 땐 사법권 위축 우려 의견도
#1. A씨(65)는 사기죄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항소심과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1심에서 법정구속된 A씨는 항소심 무죄판결까지 190일간 감옥생활을 했다. 무죄판결 후 그는 형사보상제도에 따른 형사보상금을 예상보다 적게 받았다. 그것도 보상 신청 7개월여만으로, 그를 더욱 고달프게 했다는 전언이다.

#2. 오모씨(74) 등 23명은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연루돼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구속 기간 입은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법원에서 형사보상금 인용 결정을 받은 뒤 국가에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정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최대 1년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fn 스포트라이트 사법피해자, 공권력에 무너진 삶(3)] 억울한 옥살이 형사보상금, 지급 기한·이자 규정 없어
이처럼 수사기관의 잘못으로 구금됐다 불기소처분이나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에게 지급하는 형사보상금 지급 지연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억울한 옥살이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청구인들은 법원을 상대로 보상금액 책정 다툼을 벌여야 하고 지급 요청을 한 뒤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참담한 상황에 놓인다. 구금되지 않았던 피의자나 피고인은 이런 보상에서도 제외돼 사실상 사각지대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상 결정 기한 없어… 지연 이자 소송까지

정부가 예산 등을 이유로 형사보상금을 바로 지급하지 않는 것은 형사보상법상 보상결정 기한을 정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30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형사보상제도의 운영현황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법원에서 보상청구부터 보상결정까지 최장 400일, 최단 40일이 소요됐다. 보상결정에만 6개월 이상 소요된 사례가 5건에 이르는 등 법원의 보상결정이 지체되고 있다는 불만이다.

더구나 형사보상 지급청구 사례 24건 가운데 검찰에서 보상지급 청구부터 지급까지는 최장 146일, 최단 22일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보상법상 보상결정 기한과 마찬가지로 지급 기한이나 지급이 지연되는 경우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보상금 지급까지 4개월 이상 지난 사례가 6건, 3개월 이상 3건, 2개월 이상 7건, 1개월 이상 5건, 1개월 미만 3건이었다.

이처럼 보상금이 지연되면서 지연에 따른 이자를 청구하는 소송도 제기됐다. 오씨 등 23명은 보상금 지연에 따른 이자도 달라며 소송을 냈고 법무부는 "형사보상법은 일반 민사소송법과 달라 이자에 대한 규정이 없고 지연 손해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형사보상 신청이 급증해 국가예산으로 감당하기 힘들다고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법무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형사보상도 일반 민사소송과 동일하게 지연 손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형사보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보상 청구가 제기된 날로부터 3개월 내 보상을 결정토록 하고 검찰은 3개월 내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또 기한 내 지급하지 않으면 은행법상 연체금리 등에 따라 지연이자를 지급하도록 했다.

박 의원은 "소송 과정에서 겪는 피고인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며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에 대해 법으로 정해진 형사보상금을 신속하게 지급하는 것은 무너진 명예와 고통스러운 상처에 대한 최소한의 회복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미구금자 보상은 전무… 명예회복 대책 필요 지적

현행 형사보상제도는 구금이나 형의 집행에 대해서만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상에서 제외된 미구금 피의자나 피고인도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만큼 형사보상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독일의 경우 구금되지 않은 피의자나 피고인도 국가 공권력 행사로 인해 발생한 재산적 손해를 실질적으로 보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형사보상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가 국회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최병국 전 의원은 2007년부터 피의자가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형사피고인으로서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 구속, 구금여부에 관계 없이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형사보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또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도 2010년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으나 통과되지는 못했다.

당시 법무부는 "무죄판결이 꼭 죄가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입증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전부 보상을 해줄 경우 정의관념에 반하게 된다"며 "영미법 국가의 무죄판결 비율이 30~40%를 육박하는 데 비해 우리는 0.48%에 불과하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보상대상 폭을 확대하면 국가 재정에 과도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윤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구금 피의자.피고인도 형사보상 대상에 포함시킬 필요는 있지만 형사사법기관의 귀책사유가 있으면 활용될 수 있는 국가배상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형사보상 청구가 남용될 경우 자칫 수사.기소.재판 등 일련의 국가사법권 행사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불구속 피의자.피고인에 대해 형사보상은 불가능하더라도 명예회복 조치는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인옥 팀장 박준형 예병정 구자윤 김문희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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