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yes+ Culture]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11 19:39

수정 2017.05.11 19:39

세계 最古의 미술축제 ‘57회 베니스비엔날레’ 개막
누군가는 1시간도 안돼 밥벌이
어떤이는 10시간 일해 밥 한끼
이대형 예술감독 전시 총괄.. 코디최.이완 두 작가 참여
한국관 오는 11월까지 전시, 사진 1412장 속 인물 일대기
668개의 시계에 갇힌 인생.. 카지노 자본주의의 천박성 등
‘균형’ 주제 신자본주의에 일침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카운터밸런스'를 주제로 코디최, 이완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의 카지노를 방불케하는 코디최의 작품 '베네치아 랩소디'가 설치된 한국관 앞에 전세계 미술관계자들이 몰려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카운터밸런스'를 주제로 코디최, 이완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의 카지노를 방불케하는 코디최의 작품 '베네치아 랩소디'가 설치된 한국관 앞에 전세계 미술관계자들이 몰려 있다.

이완 '고유시(Proper Time)'
이완 '고유시(Proper Time)'

미스터 K 'The Collection of Korean History'
미스터 K 'The Collection of Korean History'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참여한 코디최, 이대형 예술감독, 이완 작가(왼쪽부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참여한 코디최, 이대형 예술감독, 이완 작가(왼쪽부터)

【 베네치아(이탈리아)=박지현 기자】 카운터밸런스(Counterbalance). '균형'이라는 뜻이다. 올해로 12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미술축제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우리나라는 이 카운터밸런스를 전시 주제로 내세웠다.
현지시간으로 10일 오후 3시 개막한 한국관 전시는 12일까지 프리뷰 기간을 거친 후 오는 11월 26일까지 6개월간 계속된다.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커미셔너로,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인 이대형씨가 예술감독으로 전시를 총괄하고 코디최, 이완 두 작가가 참여했다.

이대형 감독은 "이번 한국관 전시를 통해 한국을 넘어 아시아와 전 세계에 팽배한 정치·경제·문화적 불균형을 보여주고 기울어진 세상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며 "가상의 인물 미스터 K와 코디최, 이완 작가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사 속 수직적 계보를 비롯해 동시대 속 한국과 아시아, 세계 속에서 수평적으로 펼쳐지는 이중구속(double bindings)과 이중교합(double crossing)등 뒤틀린 가치와 갈등의 뿌리를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자리잡은 한국관 전시장 외벽은 마치 라스베이거스와 마카오 등지의 거리에서 볼법한 용과 호랑이, 모텔의 네온사인들로 뒤덮였다. 바로 코디최의 네온 설치 작품 '베네치아 랩소디'다. 번쩍번쩍하고 화려한 전시장 외관 덕이었을까. 개막식을 하기 전부터 한국관은 미리 전시를 보러온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신자본주의 시대를 넘어 카지노 자본주의로 진화해가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흐름 속에서 국제미술계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비판해온 코디최는 이번 전시를 통해 베니스비엔날레의 이중성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작가 자신의 민낯 또한 가감없이 드러냈다.

코디최는 "신자본주의에서 미술이란 것이 대표적으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대변한다"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예술의 정수를 말하는 작가들의 마음도 솔직히 두 가치관이 늘 충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30년 새 미술작품이 투자대상으로 변모하면서 관객들 또한 작품을 평가할 때 예술성을 따지기보다 향후 작품의 가격상승 가능성을 고려하게 된 것.

'베네치아 랩소디' 작품 아래 한국관 정문으로 들어서면 우측에 가장 먼저 가상의 작가 미스터 K의 작품이 관객들을 반긴다. 미스터 K는 이완 작가가 서울 황학동에서 5만원에 구입한 사진 1412장에 등장하는 실존인물 고 김기문씨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 시대에 태어나 1945년 광복과 1950년 6·25전쟁을 거쳐 군사독재시절 가운데 살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이한 익명의 수백만명 한국인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일대기를 넘어 한국 사회의 근현대사를 조망한다. 이후 코디최와 이완 작가의 작품을 엮는 기반의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미스터 K의 작품을 따라 시계반대방향으로 가다 보면 이완 작가의 신작 '고유시(Proper Time)'와 페이크 대리석으로 만든 소조 '더 밝은 내일을 위하여'를 만날 수 있다. 전시관 내 작은 사각형의 방 구조로 된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 668개의 시계가 만들어내는 리듬을 만날 수 있다. 이완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전 세계 120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사랑하는 가족의 한끼 식사를 위해 일해야 하는 시간"에 대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선진국의 고소득 연봉자는 한 시간도 채 안돼 한끼를 해결할 비용을 마련할 수 있고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는 10시간을 일해야 한끼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현실을 빗대 각자에게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를 표현했다.
이완은 "세상에서 가장 부정확한 시계이지만 자본주의 현장에서 개인이 체감하는 삶의 속도를 표현하기에 가장 정확한 시계들이 됐다"며 "큐브의 상단에 설치한 아홉개의 스피커에서 이들의 사연이 각국의 언어로 나오는데 이 내용에 귀기울이면 인간의 행복과 미래가 자본에 결박당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작품 '고유시' 가운데 있는 '더 밝은 내일을 위하여'는 과거 사회주의국가에 있던 동상에서 모티브를 차용, 환상과 같은 핑크빛 미래의 꿈을 좇아 달려온 한국 사회의 비애를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 이민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강대국의 신고립주의를 비판하는 코디최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과 '코디의 전설과 프로이트의 똥통' 등 총 16점의 작품이 한국관에 선보였다.

jhpar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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