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어린이 전용 화장품’ 출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12 09:00

수정 2017.05.16 13:47

틴트를 바르는 어린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틴트를 바르는 어린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엄마 나 예뻐?”

거실에서 빨래를 정리하던 주부 박경미(가명·33)씨는 7살 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가 조용해져 자는 줄 알았는데 화장을 하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립스틱이 입술뿐만 아니라 얼굴 근처에 다 바른 딸의 모습은 ‘달려라 하니’ 홍두깨 선생 부인 고은애 같았다.

박경미씨는 “하루는 딸이 미술용 붓을 가지고 놀다가 물감을 묻혀 눈가에 바르려고 해서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밝혔다.

2015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화장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학교 4~6학년 여자 어린이 45%가 화장을 한 적이 있다. 주로 틴트, BB크림, 볼 터치 등을 사용했으며,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등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해 방송된 EBS 하나뿐인 지구 ‘화장, 아이들을 위협하다’ 편에서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91.6%가 화장을 해본 적이 있으며, 75%는 개인 화장품을 소지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초등학생 여학생들이 화장에 익숙한 것이다. 현재 어린이들은 화장품에 쉽게 노출되고 구매도 용이하다.

어린이 화장품 품목을 보면 어른들이 쓰는 것 못지않다. 주부 박경미(가명·33)씨는 “기초 스킨, 로션, 메이크업까지 할 수 있도록 립스틱, 아이섀도우 등 종류가 많고 다양하다”고 밝혔다. 이어 “매니큐어와 썬크림 팩트를 샀는데 한 개당 15,000원~20,000만원이라 가격이 부담스러웠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초등학생 화장 열풍을 반영하듯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부모에게 ‘학생 화장 허용 동의서’를 발송해 생활지도에 반영하는 사례도 있었다.

박경미씨가 구입한 어린이 화장품. /사진=박경미씨 제공
박경미씨가 구입한 어린이 화장품. /사진=박경미씨 제공

■ 식약처, 오는 9월부터 ‘어린이 전용 화장품’ 합법화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전국 초중고에 ‘화장품 사용법’ 책자를 배포했다. 어린 학생들이 화장을 하는 추세를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안전하게 화장품 사용법을 교육하자는 의도다.

현재 식약처가 관리·감독하는 화장품 유형은 ▲영유아용(만 3세 이하 어린이용) ▲목욕용 ▲인체 세정용 ▲눈 화장용 ▲ 방향용 ▲두발 염색용 ▲색조 화장용 ▲두발용 ▲손발톱용 ▲면도용 ▲기초화장용 ▲체취 방지용 이렇게 12가지다. 여기에 오늘 9월부터 만 13세 이하 어린이용 화장품을 추가한다. ‘어린이용 화장품’이 공식화되는 것이다.

신설되는 어린이 화장품 종류에는 로션과 크림, 오일 등이 포함된다. 립스틱, 섀도우 등 색조 화장품은 포함되지 않는다. 앞으로 화장품 제조사들은 어린이 화장품을 만들 때 알레르기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물질이 들어있을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기재하고 표시해야 한다.

화장하는 어린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화장하는 어린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검증된 화장품 있는 것이 낫다” vs. “상술·빈부 격차 우려”

어린이 화장품 출시에 찬성하는 이들은 어차피 어린이들이 화장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검증된 상품을 파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예민한 나이에 피부가 콤플렉스라면 화장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

직장인 장솔(가명·여·32)씨는 “어차피 화장품이 나오고 있는데 공적인 테두리 안에서 관리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 한다”며 “화장을 안 하는 것이 좋겠지만 불법적으로 시판되는 화장품은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직장인 신지민(가명·여·28)씨는 “친구들이 화장하면 유행 때문에 결국 하게 된다”며 “피부에 자극을 최소화하는 성분으로 만들어진 청소년 전용 화장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출시에 반대하는 이들은 어린이용 화장품을 따로 만드는 것은 결국 상술이며, 화장을 장려하는 문화는 좋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과다한 양의 환경호르몬 노출로 인해 호르몬을 불균형하게 만들어 성조숙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생리불순, 불임, 유방암 등 여성 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강옥희(가명·여·32)씨는 “어린이 전용 화장품이라고 해도 현재 시장 동향을 생각하면 어린이 전용 화장품에도 명품시장이 조성될 것”이라며 “학부모들과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소득격차와 차별이 생겨 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 인스타그램에서 어린이가 반트라는 비싼 브랜드의 팩트를 사용 한 걸 본 적이 있다”며 “남자들은 잘 구분 못하겠지만 여성들은 팩트 케이스만 봐도 브랜드 이름을 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피부가 연약하고 피지 분비가 활발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화장품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또한, 화장품 사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알레르기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예뻐지고 싶은 욕구는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다. ‘어린이 화장품’을 공식 출시하는 만큼, 그에 따른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중요하다.
청소년들도 무작정 화장을 하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외모를 가꿨으면 하는 바람이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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