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교육일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수능 치른 고3 "학교에 꼭 가야 하나요"

김병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18 16:23

수정 2016.12.18 16:23

페이스북에 올라온 서울 강북 A고교 고3 학생들의 조기 하교 요구 포스트잇 사진.
페이스북에 올라온 서울 강북 A고교 고3 학생들의 조기 하교 요구 포스트잇 사진.
#.서울 강북지역의 A고교. 지난달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이 학교 3학년 학생들은 수업을 일찍 끝내 달라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줄줄이 붙였다. 포스트잇에는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운전면허증도 따야 하고 제2외국어도 배워야 하는데 지금이 적기인 것 같습니다' '교장선생님 저는 학교에서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집에 가서 의미있게 시간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이러려고 등교했나 자괴감이 듭니다' 등의 내용이다.

#.고교 생활중 갖은 특혜를 받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0월 27일 정씨의 모교 C고에 대한 특별장학 결과를 발표하며 질병결석, 대회·훈련 참여에 따른 공결을 제외하면 실제 출석일은 50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발표는 하루만에 뒤집어졌다.
수능 이후 학교에 나오지 않더라도 출석을 인정해주는 '전환기 프로그램' 22일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능을 치르고 난 고3 교실은 마음이 콩 밭에 가 있는 학생들로 가득차 있다. 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온 학생들은 등교하는 것 자체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수능 치른 고3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정시전형이 남아 있지만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이미 마음이 떠난 학생들과 이들을 잡아두려는 학교가 맞물리면서 '교실 붕괴'라는 말까지 나왔다.

■"수능 이후 학교는 사실상 CGV"
18일 교육부의 수능 이후 학사운영 내실화 방안에 따르면 사실상 교육과정이 끝난 고3·중3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진로탐색·체험활동 지원을 강화도록 했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는 부처간 협력프로그램 12개와 교육부 협업 프로그램 10개를 소개하며 적극 활용하도록 했다.

매년 수능 이후 나오는 학사운영 내실화 방안이지만 올해는 출석 관리 부분을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에 수능 이후 각급 학교의 학사 운영·출결 관리 실태의 정기적 파악 등을 지시했고 각급 학교는 체험학습 등으로 승인받지 않은 무단 결석·조퇴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생활지도 및 학사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했다. 정유라씨의 고교 출석 특혜가 사실로 확인되는 등 논란이 일자 수능 이후 고3 학생들의 학사관리 강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학생들은 수능 이후 학교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서울지역 사립대 1학년 이모씨는 "지난해 수능을 치르고 나서는 학생들을 강당에 몰아넣고 나가지 못하게 막은 채 낮 12시까지 영화를 보게 했다"면서 "끝나면 다른 영화를 틀어주고 하루에 두세편씩 본 것 같다"고 전했다. 불 꺼진 강당에서 일부는 영화를 보고 일부는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고. 이씨는 "학교는 배우러 가는 곳인데 학교에서도 해줄 수 없으니까 영화를 보여준 것"이라며 "이 시간에 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하는 등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 학교 학생들은 운전면허 특강이나 메이크업 특강 등 여러 아이디어를 냈지만 모두 흐지부지 됐다. 그는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게 무엇인지 의견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수능을 본 고3 박모군은 "수업 시간표는 있지만 지난주부터 비공식적으로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 등교하지 않고 있다"면서 "보통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고 재수를 준비하거나 운전면허를 준비한다"고 설명한다. 박군은 "다른 학교 친구들은 등교한다고 들었는데 거기서도 수능 끝났는데 붙잡아둘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성적 반영 안된다고 교육 포기 안돼"
학교 역시 학생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도 없고 있다고 해도 학생들이 진지하게 배우지 않는다는 것. 경기지역 고교 교사 김모씨는 "수능을 치른 후에는 '학교가 CGV'가 된다"면서 "고3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만들기도 하지만 1주일 내내 공급할 여력이 학교에는 없다"고 털어놨다. 외부로 나가 체험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학생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 결국 이 학교 역시 영화를 상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이다. 김 교사는 "교사들끼리는 차라리 수능을 늦게 치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며 고충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학생들이 꿈과 끼를 살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올해는 정부 부처간, 교육부내 협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에 단위학교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학교별로 수능 이후 내실화 방안을 수립하도록 했고 꿈·끼 탐색주간을 운영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꿈·끼 탐색주간에는 진로·문화체험·진로·진학상담 등이 이뤄진다.
그는 "학기초에 교육과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능이 끝났더라도 정상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면서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교육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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