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두테르테 '美와 결별' 선언.. 美, 아시아 재균형 전략 흔들

김홍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21 17:55

수정 2016.10.21 20:53

필리핀, 친중행보 강화
경제.외교관계 회복 나서, 러시아와도 관계개선 시사
남중국해 안보지형 요동, 美 동아태차관보 급파.. 발언 진의 파악 나서
【 베이징=김홍재 특파원】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과 대규모 경제협력을 체결하고 친중 행보를 강화하면서 미국에는 결별을 선언하는 '격미친중(隔美親中)' 행보에 나서자 남중국해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미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진의 파악을 위해 대니얼 러셀 국무무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필리핀에 급파하기로 했다.

필리핀이 그의 말대로 앞으로 미국과의 군사적 협력관계 등을 끊고 중국과 실질적인 경제·외교적 관계 회복에 나설지 지켜봐야 하지만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친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미국은 남중국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러시아와도 관계개선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해 동아시아 안보지형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필리핀, 중·러와 관계개선

미 국무부 존 커비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간) 기자들을 만나 "두테르테 대통령의 '미국으로부터 분리' 발언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결과는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며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는 전날 필리핀 교민간담회에서 "이제 미국과 작별을 고할 시간"이라며 "다시는 미국의 간섭이나 미국과의 군사훈련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중국과 13개의 협정문 등 135억달러(약 15조2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한 뒤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해 중국의 투자를 환영하면서 "나는 그들(미국)로부터 분리할 것"이며 "당신들(중국)에게 오랫동안 의지할 것"이라고 말해 미국과 결별하고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이처럼 미국을 배격하고 중국과 가까워지려는 '격미친중' 행보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차질을 불러올 수밖에 없어 대니얼 러셀 차관보를 필리핀에 급파, 두테르테 대통령 발언의 진의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커비 대변인은 "이번 주말 러셀 차관보가 필리핀 정부 인사들과 대화를 나눌 예정"이라며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에 당황하는 나라는 미국뿐만 아니라 역내 우리의 파트너 국가들도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갈 수도 있다"며 그를 만나게 된다면 "세상에 맞서 싸우는 것은 우리 셋(중국, 러시아, 필리핀)뿐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밝혀 러시아와도 관계개선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해 주변국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美 당혹 속 실행여부 '촉각'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은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 결정 이후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등과 함께 중국을 견제해 왔으나 필리핀이 중국, 러시아 등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면서 당혹해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남중국해에서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필리핀까지 가세할 경우 미국의 남중국해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시 주석이 최근 동남아 국가 순방에서 대표적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를 방문해 선물 보따리를 안기고 방글라데시, 인도와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면서 우방국 확보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필리핀의 행보는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필리핀의 친중 행보가 '제로섬 게임'으로 끝날수 있다고 비판하면서 70년 우방인 양국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필리핀 미국대사는 필리핀의 친중 행보에 대해 "제로섬 게임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해 사실상 필리핀이 미국과 관계를 끊고 중국과 관계개선에 나설 경우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할 것임을 우회적으로 경고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의 말콤 데이비스 수석분석가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할 경우 그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중국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필리핀이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선 일정 부분의 남중국해 영유권 포기나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 훼손 등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hj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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