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000원짜리 냉면 하나 먹는데 발레비가 3천원?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14 17:38

수정 2016.08.14 17:57

대리주차의 명암
손님들 "직접 주차하겠다" ..대행사 "가게와 이미 계약"
곳곳서 분쟁일어나기 일쑤.. 과태료·차량파손 등도 문제
대리주차업 불법이지만 '고객편의' 양성화 목소리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000원짜리 냉면 하나 먹는데 발레비가 3천원?

"직접 주차하고 싶은데요."

"식당을 이용하시려면 발레(대리주차) 서비스를 무조건 이용하셔야 합니다. 발레 비용은 3000원입니다."

"7000원짜리 냉면 먹으러 왔는데 어처구니가 없네요."

"식당과 그렇게 계약이 돼있습니다."

"…."

휴일인 지난 6일 저녁 서울 개포동 국악고 근처 한 대형 냉면집을 찾은 운전자 A씨와 식당이 고용한 대리주차 요원 간의 대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A씨는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촉박해 고액의 대리주차비를 내고 음식을 먹었다. 결국 A씨는 대리주차비까지 포함해 1만원짜리 냉면을 먹은 셈이다.
A씨는 "음식점 주차장 안에서 불과 5m 정도 운전해주고 3000원이나 받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며 "서비스를 가장한 횡포"라고 억울해했다.

서울 강남권이 대리주차 서비스의 대중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A씨처럼 대리주차 강요는 기본이고, 불법 주차와 차량 파손 분쟁, 탈세 등 각종 위법이 판을 치고 있다. 이제는 대리주차의 온상지인 강남구뿐 아니라 서울 전역으로 이 같은 현상이 확산되는 추세다.

한편으론, 고객 편의 차원의 선진 서비스라는 점에서 양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답답하다. 대리주차업이 법 테두리 밖에 있지만 관계당국은 불법 대리주차의 양성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 개정에 미온적이다.

■서비스 강요에 불법 주차…위법 온상

14일 서울시와 관련 업체 등에 따르면 2000년 초반 서울 강남의 청담동과 압구정동 일대 고급음식점을 중심으로 등장한 발레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작년 8월 기준 서울지역 주차대행 등록업체수는 450개 수준이다. 특히 음식점뿐 아니라 유흥업소, 미용실, 골프연습장 등까지 대리주차가 일반화된 강남구는 대행업체수가 290개에 달해 서울시 전체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남구 곳곳에서는 대리주차 서비스를 둘러싼 분쟁이 부지기수다. 가장 많은 분쟁은 서비스 선택권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회사원 장모씨(49)는 지난달 말 대치동의 유명 소고기 전문음식점에 들렀다가 곤욕을 치렀다. 장씨는 가족들과 외식하러 이 식당에 차를 가지고 갔다가 주차요원으로부터 2000원의 대리주차를 요구받았다. 장씨는 "주차장 공간이 있으니 직접 주차하겠다"고 거절했다가 주차요원과 10여분간 실랑이를 벌였다. 주차요원은 "강남에서 유료 대리주차는 상식인 것도 모르냐"는 면박까지 줬다. 장씨는 음식점 주인에게 항의했지만 "한달에 5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대행업체를 고용하고 있어 주차 문제는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대리주차 시 불법행위들도 버젓이 이뤄진다. 주부 김모씨는 최근 24시간 운영하는 청담동 유명 고깃집인 B식당에 대리주차를 맡겼다가 주차위반 딱지를 뗐다. 대리주차 요원이 차량을 주변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에 주차했다가 적발된 것이다. 김씨는 "주차요원이 과태료를 대신 내는 걸로 해결했지만 기분이 영 찜찜했다"고 말했다. 고급 식당들이 밀집한 청담동이나 압구정동, 신사동 지역은 주택가 골목이나 인근 대로변까지 불법주차하는 대리주차 차량을 목격하기가 쉽다. 이달 초에는 서울 강남경찰서가 대리주차 차량을 도로변 등에 불법주차하면서 번호판을 가리거나 부당 요금을 받은 혐의(자동차관리법 위반)로 주차대행업체 직원 30명을 무더기 입건하기도 했다. 강남구에서 2014년 이후 올 3월까지 불법 대리주차 관련 단속건수만 6400건이 넘는 실정이다.

대리주차 과정에서의 차량파손으로 벌어지는 배상분쟁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차량파손 책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주차대행업체가 보험에 들지 않은 경우 배상 자체를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강남구 관계자는 "주차장배상책임법에 따라 대리주차 시 차량파손은 전적으로 주차대행업체에 있지만 보험에 들지 않거나 사고 규명이 어려우면 소송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리주차비는 영수증도 없이 현금결제만 받다 보니 세금징수도 불가능하다. 탈세는 불 보듯 당연하다.

■'고객편의 서비스' 양성화해야…법 개정은 '공염불'

최근 강북지역인 삼청동, 한남동과 여의도 등 서울 전역으로 대리주차 서비스가 퍼지면서 양성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행정당국의 단속이 계도나 불법주정차가 대부분이라 단속 효과도 거의 없다. 개인사업을 하는 류모씨는 "솔직히 강남에는 주차장이 부족한 곳이 너무 많아 주차 스트레스가 심한데 발레 서비스가 고객 편의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본다"며 "선진국들도 유료 발레 서비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레 서비스를 나쁘게만 볼 게 아니라 제도적 기준을 잘 만들어 양성화하는 게 더 필요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리주차 양성화 움직임은 수년 전부터 나오고 있다.
강남구 관계자는 "대리주차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 초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며 "이를 통해 운전자의 자격요건과 위반 시 벌칙규정 등을 담은 '대리주차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을 정부에 다시 건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남구가 지난 3년간 같은 건의를 해오고 있지만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토부 측은 "대리주차 관련 제도를 입법화할 경우 자칫 불법 대리주차 관행을 키우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반대 이유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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