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건설사 "부실공사 우려돼" vs. 운전자 "저녁있는 삶 필요"

최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2.28 17:35

수정 2016.02.29 19:41

레미콘 차량 8·5제 시행
건설사 "부실공사 우려돼" vs. 운전자 "저녁있는 삶 필요"
반대측 입장, 공사기간 예정보다 늦춰지며 손실 '눈덩이'
건설사·레미콘社 "운반비 인상 의도" 해석
찬성측 입장, 무기한 대기 사라지며 삶의 질·건강 향상
일각선 "공사기간 단축 문화부터 사라져야"
#1. 영하 7~8도인데도 건설사가 레미콘을 달라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이 온도에선 레미콘을 타설해도 양생이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 건물은 차후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큽니다. 그런데도 건설사가 무리하게 요구를 해와서 어쩔 수 없이 공급을 해줬습니다. 심지어 최근 함량 미달 레미콘들도 사용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레미콘사 관계자)

#2. 예전에는 새벽 4~5시에 나와서 밤 늦게까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부터는 오전 8시에 일을 시작해서 오후 5시가 넘으면 일을 마칩니다. 하루에 보통 4~5번 정도 레미콘을 나르고 난 뒤 퇴근합니다. 집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가끔 아내와 영화도 보러 다닙니다. 잠을 충분히 자니까 졸음운전도 사라졌습니다. (레미콘 차량 운전자)

28일 서울의 한 공사현장에서 8·5제 시행을 알리는 문구를 단 레미콘 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28일 서울의 한 공사현장에서 8·5제 시행을 알리는 문구를 단 레미콘 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올 들어 국내 건설현장에서 벌어지는 풍경들이다. 레미콘 운전자들이 올해부터 8.5제를 시행한 후 벌어진 현상이다.

8.5제란 레미콘 차주.차량 운전자가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제도다.

올 초부터 레미콘 차량 운전자들은 '저녁 있는 삶'을 명분으로 8.5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건설현장에서는 레미콘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 건설사는 공사기간 단축과 원가 절감을 위해 영하의 날씨에도 무리하게 레미콘을 타설하고 있다. 일부 건설사는 다급한 마음에 불량 레미콘을 몰래 사용해 건물을 올리는 실정이다. 건설사들은 "부실공사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겨울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 건설현장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3월부터는 전국 곳곳에서 레미콘 부족 현상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따라 레미콘 운전자들의 8.5제 시행에 대해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레미콘 운전자, "저녁은 가족과 함께"

일단, 레미콘 차량 운전자들은 8.5제 시행 후 저녁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물론 수입은 다소 줄었지만 가족과 저녁을 함께할 수 있어 여유로워졌다는 것. 레미콘 차량 운전자들은 대부분 개인사업자다. 레미콘 회사에 소속돼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차량을 구입해 직접 운반을 한다. 레미콘 업체 측에서도 원가 절감이나 인력 관리의 효율성 등을 고려해 자차 운용은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레미콘 차량 가격은 1억5000만원 선이다. 대부분의 차주들은 할부를 통해 구입을 한다.

서울의 한 레미콘 차량 운전자는 "우리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몇시까지 일을 할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면서 "돈을 더 벌려는 사람은 더 일을 하면 되고, 일이 급하면 레미콘사나 건설사가 돈을 더 주고 차량을 부르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수입은 예전에 비해 줄었다. 하지만 8.5제에 동참하는 이들은 더 벌어들이는 수입보다는 개인 삶의 질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아직 레미콘 차량 구입대출이 남아 있다는 또 다른 차량 운전자는 "대출을 빨리 갚으려면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게 맞지만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8.5제 시행 이전에는 오후 10시가 넘어서도 대기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일감이 없어도 건설현장에서 대기하라고 지시를 하면 항상 대기해야만 했다. 당연히 건강은 악화되고 수입도 크게 늘지 않았다.

■레미콘사.건설사, "운반비 인상을 위한 의도"

8.5제 시행으로 된서리를 맞은 곳은 건설사와 레미콘사들이다.

레미콘사들은 수시로 이뤄지는 건설현장의 레미콘 공급 요청에 8.5제 범위 안에서 공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건설사와 레미콘사는 레미콘 차량 운전자들의 일방적인 8.5제 시행에 대해 "운반비를 높이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현실적으로 레미콘 차량 운전자가 8.5제를 시행하면 건설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장기적으론 레미콘 차량 운전자들도 일이 줄어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레미콘사 관계자는 "지난해 기름값이 떨어지는데도 운반비를 올려줬다"며 "이번에 레미콘 운전자들의 행위는 8.5제를 통해 추가적인 운반비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레미콘 차량 대부분이 지입차들이기 때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그렇다고 자차를 늘리면 이 또한 지입차주들의 반발이 예상돼 섣불리 실행에 옮기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건설업체들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레미콘 물량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서 공사기간이 예정보다 늦춰질 수밖에 없다. 공기가 늘어나면 건설사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국내 건설의 '빨리빨리' 문화부터 바꿔야

레미콘 차량 운전자 8.5제 시행을 계기로 건설사들의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의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문화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공기 단축을 위해 지난 1월 기온이 영하 7~8도인데도 레미콘을 요구하는 건설사들이 있었고, 실제로 타설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시간외수당 제도의 정착화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형 레미콘사들의 경우 최근 시간외수당 제도를 점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오전 7시~오후 6시 이외의 경우엔 회전당 1만원가량을 더 얹어주는 제도다.
하지만 영세한 중소 레미콘 회사들의 경우엔 언감생심이다.

yutoo@fnnews.com 최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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