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현장르포] CJ대한통운 '실버택배원'의 하루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12 18:08

수정 2015.07.12 21:49

"주 3일 근무.. 일하는 기쁨 다시 누려"
하루 50~60개 배송 처리 보통 오전 11시에 시작 오후 5시쯤이면 마무리
"전동카트 있어 수월해 건강할때까지 일 계속"

서울 은평구 서울실버종합물류소에서 '실버택배원' 전병택씨가 8일 본격적인 택배배송에 앞서 주소별로 화물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 서울실버종합물류소에서 '실버택배원' 전병택씨가 8일 본격적인 택배배송에 앞서 주소별로 화물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전병택씨(64)는 매주 월.수.금요일마다 분주해진다. 수요일인 지난 8일에도 집 근처 서울실버종합물류소로 출근했다. 오전 11시경 점심식사를 간단히 해결하자 12시쯤 택배상자를 가득 실은 화물차가 도착했다.

평균 200~300개의 택배상자가 도착하지만,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온라인 쇼핑 이용자가 늘어나 전씨가 분류할 택배 상자도 부쩍 늘었다.

최대 500 상자가 들어온 날도 있지만, 오늘은 368개로 버겁지 않은 수준이다. 보통 오후 5시경 업무가 끝나지만, 화물이 많은 날은 저녁 9시까지 일하기도 한다.

전씨는 동네를 누비며 택배를 전달하는 택배기사다. 정확히 말하면 국내 최초의 실버택배원이다. 지난해 10월 CJ대한통운과 은평구,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노인 일차리 창출을 위한 실버택배를 추진하면서 전씨에게도 다시 일자리가 생겼다.

실버택배는 택배차 진입이 어려운 아파트 지역에 대한 배송문제와 택배기사 인력수급난을 해결하고, 노인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공적 기능까지 더해져 최근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현재 실버택배는 전국 60개소가 운영되며 470여명의 노인들이 택배원으로 일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내년까지 시니어 일자리 1000개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씨가 일하는 '실버택배 서울 1호점'의 실버택배원은 총 10명. 5명씩 '월.수.금', '화.목.토' 2개 조로 나눠 격일제 근무를 한다. 전씨와 4명의 동료 실버택배원은 하역 및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택배 상자를 일일이 확인해 동별로 나누는 작업이다. 무더위에 택배원들의 얼굴엔 금세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그러나 전씨는 "정확하고 신속하게 배달하기 위해선 분류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며 땀방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에 열중했다.

이날 전병택씨가 배달해야 할 택배상자는 총 90개, 평소 50~60개 수준보다 많았다. 제 시간에 배달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하지만 그만큼 수입은 늘 것이다. 전씨는 "한 건당 450원으로 한달 평균 30만~40만원을 번다"면서 "용돈 수준이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기초연금을 받는 것보다 훨씬 보람된다"고 말했다.

가끔 젊은 택배기사들도 힘들어하는 쌀이나 생수가 들어오지만 회사에서 제공한 전동카트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옮길 수 있다.

그는 "물이나 쌀이 들어와 무겁긴 하지만 먼 거리를 들고 이동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전동카트에 실을 때 잠깐 들기 때문에 괜찮다. 오히려 운동량이 늘면서 8개월만에 몸무게가 8㎏나 빠져 몸이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전병택씨는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울산 소재의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임원까지 지내다 1997년 외환위기로 24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야 했던 전씨는 이후 재취업을 위해 제과제빵.전기.전자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안정을 찾기 힘들었다. 최근에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해 부동산중개소를 차렸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금세 사업을 접어야 했다.

건강을 회복한 후 새 일자리를 찾던 중 어느 날 아파트 단지 내 모집공고를 보고 실버택배원에 지원하게 됐다. 실버택배원이 아니었다면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지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그는 어느 새 아파트 한 동 배달을 마치고 옆 동으로 이동했다. 높은 층부터 순서대로 택배를 전하는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밝았다. 인사도 우렁찼다.

전씨의 활기는 택배를 받는 이웃에게도 전해졌다. 주부 권모씨(50)는 택배상자를 수령하며 "다른 기사 중에는 집에 사람이 있는 줄 알면서도 관리소에 맡기는 사람이 있는데 어르신들은 문 앞에 까지 와서 반드시 확인하고 가신다"고 말했다. 인터넷 쇼핑을 자주 한다는 대학생 김유미씨(24)도 "(다른 택배기사들은) 불친절하고 물건을 툭툭 던져 놓고 휙 가버리는데 어르신들은 친절하시고 인사도 항상 해주신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전씨는 "고객들의 응원으로 항상 힘을 낸다"고 말하면서도 "부재중에다가 전화까지 받지 않을 때가 가장 곤란하다. 시간적 제한이 있어서 계속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고객들이 이런 부분을 조금만 신경써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점도 있지만 이 나이에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택배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lionking@fnnews.com 박지훈 기자 안태호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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