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통신료 요지경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25 16:49 수정 : 2015.05.25 16:49
폐지 1순위는 당정 협의.. 정부·정치권 시시콜콜 개입



박근혜 대통령 공약에서 통신분야는 이행률이 꽤 높은 편이다. 공약대로 1만원대 안팎의 가입비는 사라졌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이용자·지역 간 차별을 금지하겠다던 약속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터에 기반한 요금제를 실현하겠다는 약속도 현실이 됐다. KT·LG유플러스·SK텔레콤은 앞다퉈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발표했다. 이 정도면 통신료 공약만큼은 '참 잘했어요' 동그라미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왠지 찜찜하다. 공약 이행이 억지로 쥐어짠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데이터 요금제만 해도 그렇다. 지난 19일 새누리당은 미래창조과학부 최양희 장관을 불러 가계통신비 경감을 위한 당정 협의를 가졌다. 회의가 끝난 뒤 새누리당은 마치 데이터 요금제가 제 실적이라도 되는 양 생색을 냈다.

참 한국적인 풍경이다. 민간기업의 가격정책에 정부와 정치권이 대놓고 개입하는 것 말이다. 시장 간섭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야당은 야당대로 틈만 나면 시장에 끼어들고 싶어 안달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방위 간사인 우상호 의원은 데이터 요금제가 발표되자 "기본요금 폐지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전화사업은 정부의 일이었다. 과거 체신부는 전국에 전화국을 뒀다. 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통신)가 출범(1982년)하기 전 체신부의 통신담당 공무원은 6만7000여명, 산하 관서는 약 2300개에 달했다('기록으로 본 한국의 정보통신 역사'·진한엠앤비 간). 공룡이 따로 없다. 정부는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 산하에 공기업을 두기로 했다. 통신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 등 외부의 압력도 작용했다. 그래서 나온 게 한국통신이다. 1984년엔 한국통신이 전액 출자해서 한국이동통신을 세웠다.

그 뒤 한국통신은 민영화된다. 그게 현 KT다. 한편 한국이통은 선경그룹(현 SK그룹)이 인수해 사명을 바꾼다. 그게 현 SK텔레콤이다. KT든 SK텔레콤이든 그 뿌리는 관(官)에 닿아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정치권이 상습적으로 통신시장에 개입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예전에 한국통신과 한국이통을 산하 공기업 취급하던 버릇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통신의 공공성은 정부·정치권이 보란 듯이 끼어드는 또 다른 이유다. 주파수는 공공재다. 정부가 주파수를 할당하지 않으면 이통사업은 끝이다. 그 점에서 통신은 금융과 닮았다. 금융 역시 공공성이 높은 라이선스 산업이다. 금융당국의 관치와 정치권 낙하산이 횡행하는 것도 뿌리를 캐면 금융의 공공성에 닿는다.

문제는 공공의 영역을 어디까지 볼 것이냐다. 금융 낙하산은 공공을 빙자한 반칙이다. 그 결과가 아프리카 수준으로 떨어진 금융 경쟁력이다. 당국도 사태를 심각하게 본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사 경영에 담임교사처럼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겠다"고 누누이 다짐한다. 박근혜정부도 금융 혁신을 4대 구조개혁 과제 중 하나로 중시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금융은 변신 시늉이라도 한다.

통신은 시늉조차 없다. 외려 날이 갈수록 간섭이 심해지는 느낌이다. 시장경제의 요체는 가격이다. 가격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된다. 정부가 가격에 끼어드는 건 반칙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그 반칙을 서슴지 않고 있다. 시장을 제멋대로 주무르려 한다. 그래서 소비자가 큰 덕을 봤느냐 하면 그도 아니다. 이통사에 통신료 인하를 종용한 게 벌써 몇년째인가. 요란하게 쇼만 했지 실속은 없었다. 결국 통신시장은 정치권·정부·기업이 한통속으로 돌아간다. 예나 지금이나 소비자는 봉이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꼭 기숙사 사감처럼 군다. 하지만 기숙생들은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금융처럼 통신도 확 바꿀 각오를 해야 한다. 정치권부터 손을 떼는 게 순서다.
통신료 당정협의는 1순위 폐지 대상이다.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경쟁의 틀을 세우는 데 그치는 게 옳다.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에서 또 통신료 인하 공약이 나오면 대실망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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