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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고성장 향수를 버려라

황상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07 16:45

수정 2015.05.07 16:45

[염주영 칼럼] 고성장 향수를 버려라

모 백화점이 지난달 서울 강남에 전시장을 빌려 초대형 출장 세일을 했다. 최고 80%나 정가보다 싸게 팔았다. 전통시장 경기가 죽을 쒀도 눈 깜짝 안하던 백화점이 체면을 구기고 떨이 판매를 했다. 정부는 앞으로 상당 기간은 계획된 것 말고는 발전소를 더 짓지 않기로 했다. 전력소비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2~3년 전만 해도 여름철과 겨울철만 되면 폭증하는 전력수요로 초비상이었다.
그러나 올해 전력당국의 모습은 여유롭다.

요즘 예전에 없던 일들이 생긴다. 불황 탓일까. 경기 사이클상의 순환적·주기적 현상이라면 차라리 걱정을 덜 해도 된다. 불황은 길어야 1~2년이면 끝난다. 진짜 걱정되는 것은 이런 모습들이 추세적 현상일 가능성이다. 국내외 유수 기관들이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예측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영국의 경제연구소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해 매우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오는 2019년까지 매년 2~3%대의 성장률을 보이고 2020년부터는 1%대로 추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전망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2030년부터 2060년까지 평균 성장률은 1%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의 1.4%보다 낮다.

세계경제도 저성장 국면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 추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앞으로 5년간 세계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정체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선진국의 잠재성장률이 2015~2020년 연평균 1.6%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전망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3%대의 성장을 불황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시각이 과연 옳은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며칠 전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에서 3%대 성장률이면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 다른 나라 중앙은행 총재들의 얘기를 전하는 형식이었다. 중앙아시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아세안+3(한국·중국·일본) 회의에 참석 중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비슷한 얘기를 했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3%가량이라고 한다. 지난해 성장률 3.3%와 올 1·4분기의 0.8%(전분기 대비)는 잠재성장률 범위 안에 있다. 실적치가 잠재성장률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은 현재의 기초체력에 비추어 적정 수준의 성장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지금은 불황이 아니며 앞으로 경제가 좋아지더라도 지금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요컨대 잠재성장률 3%에 동의한다면 성장의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4%대로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고성장 시대의 착각에 젖어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런 착각이 정부와 기업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어서다. 저성장 시대라고 말하면서 생각과 행동은 여전히 고성장 시대를 따라 하는 것은 부조화다.


우리 문제의 해법은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연간 3%대의 성장이 '뉴 노멀'이라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저성장 구조를 벗어나는 중장기 과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다.
지금은 어설픈 처방 때문에 소실되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 보인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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